[사마리아]-김기덕  +   [Movie Story]   |  2009.02.22 19:29


리뷰.1
오늘.....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를 봤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봤고, 이 영화의 승과 전에 해당하는 사마리아부분까지만해도 단순한 자극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기의 부분은 바수밀다.. 결에 해당하는 부분은 소나타이다).
하지만, 소나타에서 난 정말 여러 가지에 대한 생각에 잠김과 동시에
감동을 받아야만했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이 영화 볼 생각이라면 스토리를 보지 말길 바란다.)
1. 바수밀다.
유럽여행을 위해 두 고등학생이 원조교제를 시작한다....
한명은 몸을 팔고, 한명은 자리를 알선하고 돈을 관리한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들이 모텔에 들이 닥치게 되고....
몸을 팔던 아이는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병원에 실려가지만 결국 그날 죽게되고....
혼자남은 아이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자신의 친구와 관계를 가졌던 남자들을 찾아가 관계를 갖고,
돈을 돌려준다. 남자들은 평안을 찾고 자신을 돌아본다.
여기까지가 '바수밀다'의 모티브다.
*바수밀다란?
- 인도의 한 창녀로,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자들은 그녀로 인해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었다 한다...

2. 사마리아.
사마리아역시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예수께서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을 처녀와 죽이려는 사람들앞에서
"너희중 죄 없는자, 이 처녀를 돌로 치라" 하셨을때,
모두가 자신들도 죄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뉘우치게 하신 내용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친구를 위해, 친구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그리고 죽은 친구와
관계를 가졌던 남자들에게 평온함을 주기위해
관계를 갖고 돈을 돌려주던 소녀를 경찰이던 아버지가 보게된다.
고민을 하는 아버지..... 그는 자신의 딸의 뒤를 쫓게 된다.

3. 소나타
소나타부터는 바수밀다와 사마리아에서의 일들이 하나하나의
음표로 연주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과 관계를 가진자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죽이게 되고, 마지막 남자를 죽인후 딸과 여행을 떠난다.
죽은 부인의 묘지에 다녀오는길에 근처에서 민박을 하게되고,
새벽에 몰래 울고있는 딸의 눈물을 보게 된다.
다음날 산을 내려오던길에 딸에게 운전하는 법을 알려준뒤
자신은 자수하고 자신을 데리러 온 차에 타고 간다.
이제 운전을 막 배운 딸..... 비틀거리며 열심히 차로 쫓아가려하지만
결국 늪에 빠지게 되고..... 아버지가 탄차는 멀어져만 간다.....

그 딸은 왜 돈을 돌려 주어야만 했을까?
왜 아버지는 딸과 대화하지 못하고 그 남자들을 죽여야만했을까?
딸은 왜 새벽에 민박집 앞에서 혼자 서럽게 울었던 것일까?
왜 아버지는 자수를 한것일까?
시냇가에서 차안에서 자던 딸이 꾼 꿈은 어떤의미로 해석이되는가?
아버지가 딸에게 했던 대사들과 행동들, 특히
운전을 가르치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할수 있을것인가?

나름대로 답을 내려보지만...
안개가 낀듯..... 자꾸 답이 흐려보이기만 하는것은 왜일까......
오늘같은 밤엔 머리가 맑았으면 좋겠다.
생각해볼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리뷰.2
이 영화에 관한 글들을 찾아보다가 몇개의 괜찮은 글들을 복사해 올려본다..... 만약 이제라도 이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동을 느끼고 이 생각과 느낌들을 나눠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마리아. 정말 너무나도 잘 본 영화다...

ps : 더불어 O.S.T 도 추천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깊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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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1]

한 여자.

아니 한 인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무언가 잘 못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더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소?


그 난감함과... 그 자괴감과... 그 히스테리가... 과연 어떠한 작용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마음 속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 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소?


그녀에게 그 죄책감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겠지.


그것으로 부터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이 있을까...


기억 속의 시간을 되돌린다.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으로 시간을 꺼꾸로 되돌린다면...


그런데 빠구리는 왜 했냐고요.... 아 나 참...


내 친구 의당이는... 여기에도 글을 남겼더군여...... 쩝.

뻐구리를 한 이유가.... 일종의 감독의 로리타 컴플렉스적 기질에서 나온 해석이라고 하던데......

그것은 빠구리 자체가 한 남자에게 성적 쾌감과 함께 정서적 안정을 주기때문에....

이 영화는 용서에 관한 영화라고 합디다.


그러니까... 그 자슥 말에 의하면... 쩝.


아.........시붕... 어렵다..........


어릴때 성적 불만족의 이유로 정서적 성숙도가 한 기점에서 멈춰버리면 무의식적으로 그 기점에서부터 다시 성장을 시작하려는 성향을 보이는데...

어린 여자와의 성교가 그런 문제의 해결을 도와 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도 하드만...

원조교제는 과거 가부장적제도의 엄격한 가정교육하에서 억압된 성교육을 받아왔던 사회에서 벗어나면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소년 시절 가지고 싶었던 소녀들의 유희를 억압당해왔고... 그 결과... 지금 남자들은 아련히... 그 때의 추억을 되세기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성이 점점 개방 될 수록 원조교제는 사라지며...

또한 일부 마니아 층으로 극한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 현상은 나이 많은 여성이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유희가 자행되어 질 것이랍니다.

이것은 남녀간의 성비율이 여성의 희소가치를 높이고 지난 시간 억압당해 왔던 여성의 권리가 상장됨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은 여성들에게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관한 공황적 혼돈을 제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엔 근친상간이죠...

여성들이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하면 이혼률이 증가한다는 것 입니다.

기존의 남성에 종속되어지는 형태의 결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안에 자손들은 평안하겠는가... 쩝.


자연스레 ... 무슨 컴플렉스라더라... 말 해 줬는데 까먹었습니다. 아 맞다 오이디프스 컴플랙스...

형제 자매간의 성교가 사회적 이슈를 이룰 것이라더군요.

하지만 그 역시 금기시 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일 만족이 되었다면... 형제간에 섹스를 즐기게 되었다면... 문제는 사회적으로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 주어야 하느냐가 문제이고요...

만일 만족이 안 되었다면... 형제간에 이런 저런 문제로 섹스를 하지 못 하고 속 앓이만 한 사람들이라면... 차 후에 그것은 여러가지 정서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하드만요.


이것이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 합니다. 형제간의 사랑에 대한 사회적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나면...

성에 관한 모든 문제는 안정을 이룬다고 합니다.

안정은 누군가 제약을 하지 않아도 사회적 풍토가 건전한 성문화... 즉 우리가 항 상 배우는 것들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다고 하네요.

강간율 낮아지고... 낙태율 없어지고... 창녀촌은 존재의 가치를 잃어 갈 것이고...

이런 가시적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죠.


이 말이 틀리다고 나를 욕하지 마세요. 전 그냥 친구의 말을 듣고 나름대로 생각해 보구 나서 한 번적어보는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안정이 되고 난 후에....

정신적 교감이란 것을 매우 중요시 하는 풍토가 정착된다구...

정서적 불안을 서로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돈 얼마있냐... 뭐 아니면 차가 무슨 차냐... 학교 어디 나왔냐.... 뭐 이런거보고 결혼 하잖습니까...

그런데 나중엔 정서적 매치가 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유도가 된다구... 정서가 맞지 않으면 섹스를 할 수 없다는 그런...

정신적 쾌감..... 단지 육체의 쾌감만이 아닌 정신적 쾌감을 즐긴다라는 데... 햐~

최종의 안정........ 바로 정신적 교감........ 제 친구는 바로 그것때문에......... 여자가 돈을 돌려 주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이것은 사회의 치유적 발상이고...... 어쩌면 . 물론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 감독이 그러한 성취향의 흐름을 간파하고 가장 고차원적인 섹스를 통해서 화해와 용서를 표현한 것이라면........ 이 영화는 철학적인 면에서는 보통내기의 영화는 아닐 것이라고 하드라고요.


태극기에 대해서 실랄한 비판을 일삼는 그가...... 사마리아에 찬사를 보냄은 무슨 연고인가 물었을때.... 그에 대한 답변을 대충 정리해 본 겁니다.

태극기 같은 영화를 만든 강제규 감독은 비교적 사회적 타부라고 일컬어 지는 것들에 대해서 섵부른 접근방식은 차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든데... 아마 어차피 이번으로 감독생활 끝낼 양으로 그렇게 한 것 같다고 하드만요.

그것은 감동이 아니라 자극이라고 하드라고요. 감동은 몇 번이고 울궈먹을 수 있지만... 자극은 한 번으로 끝난다고.......... 뭔가 보이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의 자극일 뿐이라던데.............


그것이 무슨 최면술하고 같다고 하든데ㅔㅔㅔㅔㅔ

무슨 최면술이더라......

아무튼 비열한 짓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마리아가 아직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만큼 완숙한 완성도를 지닌 영화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라더군요.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상징이 머릴 때리면서.......쩝.
그니까......... 뭐시더라...... 상징과 상징이 만나서 하나의 또 다른 상징을 만들고 그 상징은 구성별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져서......... 햐~ 잠시만....

나눠줘서 최후의 상징은 처음의 상징을 이해시키고 또 처음의 상징은 후반부의 상징을 강하게 뒷받침 해 주면서 감독이 의도한 이해와........ 용서의 방향으로 자연스런 유도 된다면...........

고급적인 구성방식은 아니었다는게 친구와 저의 평입니다.

하지만 비교적 정직한 영화라고 ........

앞으로 태극기보다 ....... 실미도보다........ 사마리아 같은 영화들이 더욱 완성도를 가져야 하고........ 또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구성미를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대중들에게 상업성과 함께 엄청난 철학적 중량감을 안기는 문제는 실로....... 고차원적인 문제라 말을 아껴야 한다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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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2]

시각의 성숙함 또는 미숙함.. 혹 다양함.

그 어떠한 시각으로서도 내려질 수 있는 한 가지 공감은...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양심의 가책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공감으로부터 출발되어지는 또 하나의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제 3 자의 시각이다.

소녀의 아버지도 아니며...

소녀 당사자도 아니며...

소녀와 유희를 즐기는 자들도 아니며...

또한 그 무엇도 아닌...

그저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각.


그 시각조차도 그러한 일에 양심을 운운할 것이겠지.

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숨겨진 욕망도 확인하게 될 것이고... 동시에... 힘겹게 지탱하는 양심도 확인하게 될 것이겠지.


그 광경에 그다지 정신적 공황에 빠져들지도 않을 것이며...

그다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을 것이겠지...

진실의 외면과 왜곡이... 서서히 자신을 감싸안을때에도... 묵인으로 자신을 위로하려 할 것이고... 한 번쯤 그런 유희와 쾌락을 상상하면서도... 양심과의 갈등 속에서... 하나의 선택을 할 것이겠지.


사념들은 점점 번저가겠고... 또... 전염될 것이겠지....


그리고 서서히 자신도 그러한 현장에 몸을 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혹, 아닐 수도 있겠지.

만일. 그러한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면... 그 이전 제 3 자의 시각에서의 모든 상상들과 실제론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자신이 제 3 자의 입장이었을때... 가장 정확한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있었으며... 또 사실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물 밑을 걸으면서...

물 밑의 흐느적 거림 속에서...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을때...

물 위를 바라보면서...

물 위에 떠다니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유롭고 싶어서겠지.

누군가 물 밑을 내려다 보며 나를 신기해 한다면...

손을 내 밀어 구원을 바랄지도 모를 일이나...

그 손을 잡는 순간 그도 물 밑으로 내려와버린다면....

혹, 누군가 그들을 구원해 물 밖으로 꺼내어 준다 하여도...

추은 몸을 떨며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을까...

물 밑의 내가 바닥으로 걸어다니며...

흐느적거리며 괴로워할때...


그것을 애써 다른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여자가 매춘에 길들여지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자신의 성을 아무렇지 않게 남에게 보이며 돈을 요구할 수 있기까지 얼마의 변이가 필요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매춘은... 본능이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무엇을 사랑했을때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돈을 사랑한다면... 훗.


돈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일까...


모르겠다.


오감의 만족보다... 지적인 만족보다... 인간의 본능의 만족을...

사마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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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3]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진입니다. 우선 사마리아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독님이 아니기때문에 답변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나 나름대로 제 생각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김기덕감독의 영화는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지만 상당히 상징적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친구를 대신해서 관계를 맺고 화대를 돌려주는 여진.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설정입니까.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친구가 죽게된 업보, 혹은 그자신이 죽은 친구의 매춘에 대해 강력하게 더럽다고 비난했던 것에 대한 참회의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상징은 여진이 자신은 재영이가 죽은 후 정신적인 충격으로 재영이의 모습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생전에 얘기했던 잠을 같이 자면 그남자는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고 만다는 인도창녀 바수밀다로 말입니다. 이 또한 불교적 의미의 보시라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남자들은 평온을 얻은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괴감에 쌓일뿐입니다. 50대 남성이 문득 자신의 딸이 보고싶어진다던가 폭력적인 남성이 여진의 보살핌에 오히려 아이처럼 품에 안겨 운다던가 하는 설정들이죠.
또하나는 여진이 만났던 남자들의 시각에서 영화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반성을 하건 만족을 얻건간에 아버지의 시점으로 넘어간 스토리는 딸보다 어린여자를 범하기나 하는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또한 재미있지 않습니까. 여진이 보는 남자들은 감싸주어야 할 대상이지만 아버지가 보는 시점에서는 정말 파렴치한 원조교제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가에서 여진이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꿈을 꾸는것은 여진의 무의식이 아니라분명한 감독의 개입으로, 영화적인 두 가지 결말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여러 남자에게 욕보인 딸을 죽여야할 것인가. 그 자신이 스스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게 지켜보아야할 것인가에 관한것이죠.
사마리아는 성서에 나오는 중동지방 지명이름입니다. 들어보셨겠지만 사마리아 여인이라는 성서의 구절이 있습니다. 8명의 남편을 가진 이 여인에게 부정하다고 돌을 던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희중에 죄없는자 이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그렇습니다. 이땅에 가치관이 채 세워지지 않은채 세상에 내몰리는 수많은 청소년들과 그 현상을 욕하기전에 당신은 과연 이들을 벌할 자격이 있는가를 되묻고 있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들고 있는 "ㅗ"모양의 돌의 형태는 영화속 의미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것입니다.
좀 허접하고 긴 답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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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4]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우리에게는 있지만 사실 현실이라는 세계는 그렇게 아름답게 흘러가지 않는군요.
'그리고 봄'...에서 더 악랄해진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여 쓴 웃음이 나오더군요. 너무나 리얼해서...
그리고 어제 사마리아를 보았습니다
원조교제라는 소재속에서 이토록 애잔함을 자아낼 수 있다니...
죽은 친구에 대한 사랑을 몸을 주고서라도 전하고자하는 그 소녀에게 ...
그래요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어요....
다만 보고있는 이들의 마음이 찢어질 따름이겠죠
아빠처럼은 아닐지라도.....
소재가 주제를 대변하지는 아니하듯이...소재를 주제로 결정하여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게는 가슴이 아픈 영화였습니다.
바수밀다도, 여진이도, 재영이도, 아빠도, 그리고 원조교제를 하려는 남자들도...
인생이 얼마다 고달프고,,,죄 많습니까?
도덕을 논하지는 맙시다.
그냥 인간이 얼마나 고통속에 거하고 있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발버둥치며 버텨가고 있는지...
모두가 가난하고, 모두가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중생들임을 ....
그냥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혼란스럽게 자신을 잃은 듯 살아가는데...
몸을 팔던 재영이만은 죽는 순간까지 미소짓는 모습이더군요.
재영이만은 모두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 겸손한 당당함이 있더군요.

재영이는 구원받은 소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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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5]

김기덕 감독 영화를 보고 나서 울다니
저를 싸이코로 여기는 분도 계시겠지만 정말
감동적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감독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하죠...그래서 감독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사마리아...왜 이영화로 김기덕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사회 의 부조리를 카메라를 통해 풀어헤침으로서 영화를 보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성찰하고 주위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세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있습니다.
친구의 죽음, 그로 인한 소녀의 원조교제, 아버지의 복수.
그중에 가장 압권은 아버지의 복수였습니다.
소녀는 남자들이 자신과 잠을 자면 남자들이 정화될것이라
믿으며 자신이 바수밀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쓰레기죠. 자신의 딸보다 더 어린 여자아이와 자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도 않고 오히려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고 말은 합니다.
영화에서의 진정한 바수밀다는 아버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가슴찡한 아버지의 사랑에 눈물이 울컥합니다. (지금도...) 버러지 같은 인간들은 죽음에서도 양심의
가책을 못느낍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는 흑흑ㅜㅜ
라스트신이 정말 멋있습니다.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는...아버지의 사랑은 정말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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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6]

사마리아....

그 동안 계속 보고싶었던 영화라....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나쁜남자, 수취인불명

해안선, 파란대문, 섬 , 악어등....

김기덕감독에 영화팬이라서...

전 영화를 다볼정도로..그래서 이번에도

개봉후 그 다음날에 보러갔죠...

전체스토리는 하나로 되어있으나..

그속에서 스토리는 바수밀다-사마리아-소나타에

3개섹션으로 나뉨니다.

바수밀다는 인도에 바수밀다라는 창녀가

그와 관계를 맺은후에는 불교신자가 된다면서...

자신과 원조교제 통해서 그 사람에게 모성애를 주고싶은

여고생에 이야기....

사마리아는 원조교제를 하는 친구의 죽음으로...

죄책감으로 인하여 그 친구와 관계를 맺은사람들에게

자신도 원조교제를 하면서 돈을 돌려주는것으로..

친구의 대한 죄책감을 씻을려고 한다...

소나타는 딸에 원조교제 현장을 목격하면서...

아버지로써에 죄책감과 딸과 관계를 한사람들에게

증오의 복수심 그리고 딸에 대한 연민과 용서를 풀어내는..

이야기에 구조로 되어있다....

그동안 김기덕 감독 영화를 보면....

가장 큰 특징중 하나가 사회에 대한 반항과

복수와 증오를 표현한 스토리가 많았다....

이 영화에 특징 역시 증오에 대한 스토리가 있지만...

그전 영화에서 찾아볼수없는 화해와 용서에 비중을 두어...

감독이 표현하려는것이 원조교제에 대한 부작용과 아픔을

담을려고 표현한것 같지만 그속에서 사회에 대한 복수와

증오를 화해와 용서에 구조에 표현을 담아서

스토리를 표현하는것 처럼 보였다....

영화 마지막장면에 그 이유나 나온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버지가 딸에게 표현하려는 그 묘한 부성애....

친구에 죽음으로 인하여 그 죄책감과 용서를 빌려는 그녀에

단순한 원조교재가 아닌 그 하나하나에 만남을 통해...

사람들에게 성적인 갈구이외에 모성애와 연민을 주려는 소녀..

부성애,동성애,연민,증오,화해등이 한편에 영화에

담아있는 영화..영화본후에 왠지모를 씁씁함과

그 씁씁함이 아직 이런 세상에 공존한다니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감상point

1. 동성애,모성애,부성애등 다양한 사랑에 대한 표현
2. 원조교제에 부작용과 아직도 그러한 것이 시행되고있다는 씁씁함
3. 아버지가 딸에게 표현하는 부성애
4. 잔잔하면서 쓸쓸하게 들려오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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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7]

토요일..주말이라도 아이가 있는 가정에선
영화를 본다는게 좀처럼 쉬운일은 아닙니다.
저희는 5년전부터 갖아온 부부 모임이 있습니다.
크는회...
아이들이 쑥쑥 커나가고 우리도 발전해 나가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크는회라..
총 6가정이구요..

저희 부부 모임은 정말 어렵게 시간을 맞춰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한팀의 불참으로
총 5쌍에 10명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게 쉬운건 아니죠..
전 그렇습니다.
영화를 고를때 제가 좋아하는 장르나 좋아하는 배우, 혹은 그떄그때 주목받고있다거나 흥행되고 있는 영화에 눈길이 먼저 갑니다.
이 영화에 관심은 있었지만 군대얘기,전쟁얘기 좋아하는 남자들과 영화를 보자니
태극기 휘날리며로 발길을 옮겼죠.
그런데 티켓 발권 절차상에 문제가 생겨
7명은 예매한 영화를 그리고 저희부부와 운없게(?) 남겨진 회원..
저희 셋은 원래 보려했던 영화의 시간을떼우려하다고
운좋게 딱 맞아떨어지는 시간대에 사마리아를 보게 됬습니다.

정말 시간때우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관심은 있었지만
구지 극장에서 볼거 있을까 싶었는데..
나쁜남자처럼 처음봐서는 이해 안될지도 모르는..
그저 문제작이나 이슈가되고 말지도 모르는 영화로 생각했는데..

한동안..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바수밀다 재영을 보내고 여진이가 여관에서 첫 관계를 갖은 후
떠나간 여진을 뒤로 딸아이에게 외식을 하자던 대사에도
두번째 관계때 널 위해 기도하겠다던 바람머리 아저씨의 말에도
전 웃을수가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관계를 가진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장의 뺨을
그 가장의 딸아이를 포함한 식구들 앞에서 뺨을 후려 내치는 장면에서
"그래도 저건 아니지.."하던 어느 관객의 말을 뒤로하고
이를 악물며 눈물 흘렸습니다.

딸아이가 탄 차를 미행하다 가로막은 차를
아무 말없이 몸소 차를 다시 뒤로빼 자기 갈길로 차를 몰고가던
그 아버지의 뒷모습에
"저사람 진짜 무식하다"며 내뱉는 젊은 관객의 말이
공원에서 죽은 그 남자처럼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산소 근처에서 하룻밤 묵어가려는 두 부녀앞에
머쓱하게 대답하던 할아버지에게서
사람냄새를 느꼈습니다.

부인의 산소에 들렀다 내려가는길에
딸아이를 위해 돌에 노란 페인트칠을하던 아버지를 보고
또 그렇게 딸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렇게 칠해진 노란 페인트처럼 아버지도 그런것 같습니다.
위험을 알려주고 경계할수 있게 해주지만
그 위험에 빠져들었을 땐
어떻게 할수 없는
그저 그자리에서 묵묵히 지킬수 밖에 없는
노란 페인트 칠해진 돌과 아버지는
그렇게 힘들고 위험하고 슬퍼보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저희에게
시간 때우기용의 영화였던 사마리아가
딸아이를가진..저희 부부와 운없었던 나머지 한 회원에겐
정말로 값진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여진이처럼, 재영이처럼,
아버지처럼, 그리고 관계를 갖은 그 남자들처럼..
저도 죄짓고 사는 사람일것 같아서
이 영화앞에 떳떳히 서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딸키우기..자식키우기 무서운 세상입니다.
제가 저희 부부가 저희 아이들과 다른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상처주지않고 살 수 있을까요...
혹 상처주고 상처 받았다고해서
모두 숨기고 지내야만 할까요...

소망합니다.
저희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무 걱정없이
소중하게 커 나갈수 있기를...

아버지가 여진이에게 이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아침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것 보다
꿈속 강가에서 딸을 뭍고난 뒤 들려주는 장면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김기덕 감독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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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8]

사마리아를 봤지요.
요즘 신문을 가득 메운 기사들 중에 하나가 영화 사마리아이기 때0문이였죠.
그리고 신문기사 내용이 생각 났습니다.

"사마리아 원조교제 영화 아닙니다"

그리고 그 기사의 김기덕 감독님의 말을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사마리아....
원조교제 영화 아닙니다. 그 원조교제란 말의 의미가 포르노를 연상케 한다면 더더욱 그런 영화 아닙니다.

사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블란서 영화 한편 보는 느낌이였거든요. 그리고 예전 본 피아니스트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연상의 여 선생과 어린 학생... 그 난해함을 다시 느꼈죠.

영화를 보고 나와서 폭설로 마비가 되어버린 눈길을 걷는 내내 친구들과 왜? 라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재영은 왜 원조교제를 통해 바수밀다와 같이 남자들에게 깨달음 혹은 구원을 줄 수 있다고 믿었을까? 혹은 그 반대로 자신이 느껴야했던 원초적인 외로움을 반대로 그들에서 위안 받고자 한 것은 아니까?

왜 재영은 뛰어내렸을까? 원조교제를 죄로 생각지 않는 재영이 뛰어내리는 것. 그러나 그 모습은 두려움이나 잘못의 인정은 아니였다.공포스러울만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가며 친구가 보는 앞에서 4층에서 뛰어내리는 재영...

그리고 왜 감독은 친구가 죽어가는 순간에 음악가가 주인공과의 성관계를 요구한다고 했을까? 아니 그 음악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미친 발상을 했을까?

그리고 가장 엉뚱한 것은 주인공 여진은 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난 관계를 하고 돈을 돌려주어야만 했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왜 죽은 재영에게 미안한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아버지...
자신의 딸과 관계를 한 모두를 죽인 것이 아니라 반성하지 않는 자만 죽이는데...
그것은 그렇게 의도되어진 것인가?

그리고 그 대사들 중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어디에 있고 뭘 의미하는 것인가?

별 잡다한 생각과 질문이지만... 역시 보고나서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임은 분명했습니다. 기존의 김기덕 감독 식의 단답형의 영화는 아니지만 역시 김기덕표 영화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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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9]

제목 : 정신과 의사가본 김기덕......그리고 사마리아.

그를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게 세 가지 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아주 자세히)"

"그 동안 무슨 책을 봤느냐?"

"요새 혼자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사마리아...
비씨 8세기경 이스라엘을 앗시리아 민족이 지배하면서 토박이 유대인과의 혼혈아...그래서 억압과 배척을 받았던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란다.

원조교제...
제목이 갖는 의미를 얼추 감을 잡게 만든다.



1. 혹평과 호평

아마 김기덕 감독 만큼 평론가들의 호평과 혹평의 극과 극을 달리는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그 비슷한 예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전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기자나 평론가들의 글을 보지 않았다.
영화 보고 나서, 나랑 비슷한 '공감'을 말하는 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단순히 혹평과 호평의 차원이 아니라...)

한 영화를 이렇게 다르게 보나 싶었다...
내가 잘 못 본건가...

2. clumsy & real ... & construct

서투름 과 사실적... 과 구조(짜임새)
아마 이 두 단어를 환상적으로 조합을 만든 감독이라면 '홍상수'가 있을 것이다.
김기덕도 그에 못지 않다...하지만 두 감독은 너무 다르다...

(1) 홍상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아 이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싶었다.
거기의 배우들을 보고, 일부러 연기 안되는 신인들을 써서, 서투르게 보이면서 사실적으로 그렸나 보다 했다. 짜임새 또한 놀랄만 했다.
웬걸...유명배우를 써도 그대로였다.
모야? 알고보니 그 어색한 말투, 우스꽝스러운 몸짓, 어디다 둬야 될지 모를 듯한 손짓...그 하나 하나를 홍상수의 머리속에서, 입으로 나왔던 것이었다.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아주 '정교한' 서투름을 만드는 그만의 경지에 감탄이 나왔다.

(2) 김기덕...
사실적인 면에선 홍상수와 쌍벽을 이루지만...
김기덕은 서투르다기보단 어설프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짜임새? 영 아니다...

그러나...어느게 좋고 나쁘다의 평이 아니다.
김기덕도 홍상수처럼 아주 '정교하게' 그것을 만들어 냈느냐가 정말 궁금하다.
궁금하다...난 모른단 말이다.
그래서 어느게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김기덕은 저렇게 어설픈 장면을 왜 만들었을까...
어설펐는지, 아닌지도 몰랐을까?
알고 만들었을까, 모르고 만들었을까?
저 정도의 어설픈 장면과 시간적 연속성은 그가 말하고 싶은 주제에 하등의 신경조차 쓸 필요 없기에 '무시'하고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 주제를 빛내기 위해, 직전에 그런 어설픈 장면들을 일부러 넣는 고도의 작전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창동의 '오아시스'처럼 아예 대놓고 극단적으로 만화처럼 만들지? 아닌가...

주연을 제외한 모든 단역배우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홍상수의 그것과는 다른 서투름을 보였고...
병원에서의 의사들 행동(절대 보호자 없다고 수술할 환자 냅두지 않는다)도 그랬고...
무슨 70년대 영화의 '나 잡아봐라~'하는 식의 초반부 두 주인공의 낭만이 그랬고...
어디서 났는지...노란색 페인트도 그랬고...

내가 아직 영화에 지식이 별로 없기에, 김기덕과 몇마디라도 나누지 못했기에...
나는 그의 '의도'를 모르겠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를 말하지 못하겠다.
하여간 어려운 감독이다...

3. 평론가들과의 이견(나 만의...호호호)
(1)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자라는 점에서‘원조자'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아버지의 이야기..."

: 지금 글 쓰는 나도(남자다...) 여자랑 떡치고 싶다.
--> 지하철안에 반이 남자다.
--> 이 많은 '놈'들이 다 떡을 치고 싶어하는 남자다.
--> 나랑 똑 같은 '놈'들이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비약인가?
원조교제 하려는 '단역배우'들이 모텔 앞에서 왔다갔다 한대서, 그와 같은 '성'인 아버지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란 말인데...
이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눈을 씻고 봐도, 집에 돌아와 '복기'를 해봐도...도대체 어떤 장면과 복선과 대사에서 그런 이미지가 나왔다는 말인가?

(2) "김기덕의 원래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이미지가 줄어들었다..."
"전작의 강렬한 이미지가 줄어들어서 보기에 불편하지 않다..."

: 그의 영화는 잔혹한게 아니다.
그의 영화는 엽기적인게 아니다.
그의 영화는 보기에 불편한 영화가 아니라, '보편타당성'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그것을 잔혹하게 보고, 엽기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수취인불명'에서 목 조르고, 대놓고 패고...이런 장면이 한 컷 뒤에 사라진 장면에서 살짝 나온다고...그런 '원래의' 이미지가 줄었단 말인가?
눈에 보이면 그렇고, 살짝 안보이면 안그렇단 말인가?

(3) "여진은 스스로 남성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짐승같은 죄의식을 어루만지고 승화시킨다. 죄가 스스로 녹아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 영기는 남성들의 죄의식을 승화시키기는커녕, 그것을 폭력으로 응징한다. 그는 죄를 범한 자들을 처단함으로써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속죄 의식을 치른다"

: 그건 '승화'가 아니다.
그건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유아기적 퇴행'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내가 하나 받았으니, 내가 하나 주고, 네가 하나 빼았았으니 너도 하나 빼았겨야 한다는 식의, '단순으로의 회기'로 돌아갈 수 박에 없을 정도의 trauma의 결과물이다.

그건 '응징' 아니다.
그건 보통 아버지라도 저럴 것이다...하는 처절하고 서글픈 '공감'이다.
그건 자괴감과 무능함에, 무너져 가버리는 꼴을 보면서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vicious cycle 이다.

'죄의식을 승화시키기는거녕...'이라고?
... '시키기는 거녕' 이란 말이 여기서 어울리는 단어와 문장 선택이란 말인가?

(4) "그러는 당신은? 두 사람에게 돌 던질 자신이 있는가"

: 가만히 보면, 김기덕이 남성주의 감독이 아니라, 평론가들 스스로가 남성주의적 관념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 같다. 아마 이럴 것이다.
이 영화가 '당신도 어린 애랑 떡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봤단 말인데...
이 영화가 '여자애도 책임이 있지만, 당신이랑 떡을 쳤으니 모라 할 것인가' 라는 주제를 담고 잇다고 봤단 말인데...

이미 온갖 뉴스를 통해서 원조하는 남자들이 '보통'남자들이란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잇는 사실을 김기덕이 '억지로' 알려주려고 했단 말인가?
흠...진짜로 그렇다면...실망이다...
근데 느낌상 그건 아닌 것 같다.

난 그 말 자체에 '공감'이 가질 않는다.
어딜 봐도 이 영화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흔적이 없다.

(5) "구원..."

: 누구를 도와준다는 구원이란 말인가, 원망을 간절히 원한다는 구원이란 말인가...
어디를 봐서 이 영화에 '구원'의 이미지가 있단 말인가?
내 생각엔 영화사에서 돌려준 프로필과 시놉시스를 보고, 그대로 베낀 것 같다.

그렇다면, 영화사...김기덕이 '구원'이란 단어를 선택했단 말인데...

'바수밀다'란 대사가 나와서? 바수밀다처럼 동침을 하고 불자로 만들진 못하지만, 예전의 미웠던 남자들을 같은 방식으로 '용서'한다해서?
그렇다면 너무나 빈약한 이음새이다.

주인공 여진이 재영과 떡 쳤던 남자들과 다시 떡 치면서, 돈 돌려주고
"재영이도 이렇게 좋아했어요? 내가 정말 고마워요..." 라는 대사가 갖는 의미가
(내가 당신들 남자를 용서할께요. 구원할께요) 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비약' 그 자체다.

주인공 여진이 재영과 떡 쳤던, 남자들과 다시 떡 치면서, 돈 돌려주고, 재영이가 겪었던 '고난'을 몸소 겪으며 재영과 '공감'을 가지려 하는...그 고난의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차라리 예수님의 고난에 빗댈만 한 설명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구원'에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김기덕은 왜 '구원'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나?
감독이 이렇게 단정지어주면, 이 영화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건 관객들의 객관적인 시선을 붙잡아두는 역효과가 발생하기 쉽상이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는 화가 나신 하느님이자, 자애로운 예수님이다. 그러면 말은 아다리가 들어 맞는다.

그러나 '구원'이란 단어가 미리 주어지지 않았으면, 나는 그렇게 아다리를 맞추지도 않았고, 맞추고 싶지 않다.

이 영화는 "용서"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용서'를 '구원'이란 단어로 바꾸는 것은 아주 어울리지 않는 과대포장이다.

김기덕도 어느 인터뷰에서 그랬다.
"용서의 영화...배척받는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다...라는 영화이다"

그러면 '구원'이란 단어는 잔머리 좀 굴리려는 참모 대가리에서 나왔단 건가?
잔머리...잘 굴려야 욕 안 먹는다...

(6) 보기에 불편했던 이전 영화...보기 불편하지는 않은 이번 영화...

: 다음 장에서 논한다.



5. 김기덕...그의 영화...그의 인물들...

(1) '악어'부터 시작해서 모든 그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다.
개인적으로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은 것은 '수취인불명'이었다.
가히 소름끼치는 수작이었다.

'보기에 불편했던 이전 영화'...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미 그 차원을 넘어섰다.

그는 국졸인가 고졸인가 한단다. 학력이 아무 의미 없다...
도대체 어떻게 삶을 가졌었나?
어떠한 루트로 심오한 인간들 성격만 찝어낼 수 있나?
프랑스가서 뭘 어떻게 배우고 익혔는가?

혹평을 하는 평론가들은 '그의 영화는 일반 상식의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파격과 엽기로 점철된 변두리 영화'라 한다.
'보기에 불편한 영화, 참을 수 없는 영화'라 한다.

'보기에 불편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평론가가...나아가서는 말 그대로 일반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안 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왜 안 봤으면 좋았을 걸...할까...
"본능"때문이다...

김기덕은 인간의 instinct를 아주 잘, 쏙쏙 집어내고 있다.
너무나 잘 집어내기에, 그의 '어설픈 연출'에 서두에도 말했다시피, 섣불리 혹평을 가할 수 없다...
(이런...김기덕한테 말려드는 기분이다...)

본능은 의식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알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무의식 수준에서 감추고 싶은, 나만의 치부를 의식 수준으로부터 끌어내리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다.

김기덕은 그 본능을 아주 잘 찝어낸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선 우리들 마음 한 구석이 아주 '찝찝한' 여운이 남는다.
이 찝찝한 여운은 곧 나의 무의식속으로 감춰진다.
숨겨야하니까...그래야 내가 사니까...

그래서 그의 영화가 "보기에 불편한 영화"이고,
다시 말하면 "안 봤으면 좋았을 영화"라는 것이다.


여기저기 잘도 쓰이는 '본능'이란 말...
모...사람은 살인본능이 있느니, 떡을 치고 싶어하는 건 무조건 본능적이니 하는데...

이 말들은 프로이트 책을 어설프게 보는 것에서 유래한다.
그는 후기의 본능론에서 인간은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들이 보통 알고 있는 "섹스"와 "공격성"의 본능은 다 각각 여기에 포함된다.
"sex"라 하니까, 이 말을 떡 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실은 성교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성 그 자체, 자기나 타인 또는 대상으로 향하는 정신적인 에너지로 보면 무난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말이 길어지니...)
"aggression"이라 하니까, 다 때려부수고 죽이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실은 그 뿐만 아니라, 성공, 자아 실현에 향하는 모든 정신적인 에너지로 보면 무난하다)
다 어설프게 책 제목이나 문단 제목보고, 어림짐작으로 만들어낸 중대한 '오류'이다.
"죽음의 본능"하니 자살이나 타살만 생각하는데, 이보다는 인간이 원초적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욕구로 보면 무난하다.
원초적? 유아기를 더 지난, 태아기를 더 지난...그러면 원초적은 '죽음'이 아닌가 하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었다.

내가 주인공의 행동을 '구원'이나 '승화'가 아닌 "유아기적 퇴행 상태"로 보았는데, 만약 그렇다면, 김기덕은 주인공의 "죽음의 본능(원초적 회기)"을 정확하게 찝어내고 있다.
고도의 정신과적 base가 없다면, 내가 생각하기엔 힘들 것이다.

이 영화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의 인물들을 관통하는 것은...
이 "instinct"를 읊는 것에 대해서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정교하게,
아주 아다리가 맞게,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내가 봐도 "미친 년,놈"으로 보이지만, 그냥 미친 년,놈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모 어렵겠느냐? 모 다들 미친 놈, 년으로만 보이더만...할 수도 있겠지만,
멀쩡한 사람이 잔머리 굴려서 꽁수로 미친 년,놈 흉내를 낸다면, 전문의 수준에선 거의 정확하게 진위를 감별해낼 수 있다.
어설픈 지식으로는 그런 미친 년,놈을 그리는 흉내도 못낸다.

그의 인물들은 아주 "정확한 미친 년,놈들" 이다.
이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는 삶이 아주 고단했던 사람들이 휘갈기는 광기의 글,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김기덕이 차원이 다르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만난다면 그의 삶도 중요하지만, 뭔 책을 익고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묻고 싶다는 것이다.

(2)기승전결
그의 영화는 이게 아예 없다.
영화 초반부에 갑자기 예고도 없이, 큰 일이 일어난다.
놀랄 사이도 없다. 그냥 눈앞에서 벌어진다.
그런 장면들을, 거의 풀샷으로, 카메라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찬찬히 보여만 준다.
그런데, 가슴은 벌렁거린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느낌이다.
파격적이면서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딸을 죽이는 게 (꿈으로) 보이는, '아...저렇게 되나...' 했다가...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운전을 가르쳐 주는 마지막 씬은,
말은 안 했지만, "미움"과 "용서"와 "미안함"과 "화해" 의미가 보이는,
사랑 애, 미울 증...애증의 양가 감정이 교차되는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아빠는 여기까지야. 이젠 너 혼자 가야돼" 라며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과 뒤따라 가려는 딸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3) "분노"
마직막은 간단히 한다.
그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감정은 "rage" 라고 본다.

고차원 적으로 가면 뭐에 대한 분노이냐가 중요하지만,
분노 자체가 우리들 삶을 지배하는 매우 강력한 감정이다.
(단순히 화나서 화풀이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일부 또는 전부를 아예 '지배'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 '분노'이지만,
거의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르는 것이 '분노'이다.







김기덕은 그 "거의 아무도" 에는 속하지 않는, 특별하고 놀라운 인물이다.




피에스 :
1. 돈을 적게 들여서 그런지, 2주만에 만들어서 그런지, 모 그런 건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진 모르겟지만...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구경꾼들을 그대로 잡아내서 보여주는 건 당혹스럽다.
이것마저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 같고...

2. 양동근이 그의 최고의 연기력을 보인 "수추인불명"이 큰 비디오샵에는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 소름끼친다. 대단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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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리뷰가 길어졌네요^^
긴 글 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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